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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08월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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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48, August 07, 2018

‘굽이굽이 장강은 동으로 흐르고 수 많은 영웅들은 물결 속으로 사라졌네’

명(明)나라 문학가 양신(楊慎)의 <임강선(臨江仙)>에 나오는 이 구절은

강물이 거센 물보라를 일으키며

만리 길을 쉼 없이 도도히 흘러가는 것을 묘사했다.

창장(長江: 장강)강은

세계 지붕의 설산에서 발원해 동쪽으로 흘러 바다로 들어가며

상고의 역사에서부터 지금까지 흐르고 있다.

오래되었으면서 늘 새롭다.

윈난(雲南)성 디칭(迪慶) 장족(藏族)자치주 더친(德欽)현 경내에서 촬영한 진사(金沙)강[촬영: 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창장강의 발원지

400여 년 전

창장강 강변에 사는 한 소년은

세차게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감탄하곤 했다.

이 강은 대체 얼마나 많은 지방을 지나갈까

얼마나 많은 강을 모을까

어디에서 발원했을까

 

이 소년이

서하객(徐霞客)이다.

훗날 답을 찾기 위해

노인이 다 된 그는

의연히 멀고 먼 답사길에 올랐다.

윈난성 리장(麗江)시 스구(石鼓)진 녹음이 우거지고 비옥한 농지 사이의 ‘창장강 첫 굽이’[촬영: 신화사 후차오(胡超) 기자]

선진(先秦) 시기 유명한 지리서

<상서•우공(尚書•禹貢)>에

‘민산도강(岷山導江)’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이는 민장(岷江)강이 창장강의 수원이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상서>의 권위성으로 인해

수백 년 간

이 주장은 유력한 학설로 인식되어 왔다.

창장강 싼샤(三峽) 우샤(巫峽) 구간[촬영: 신화망 리상보(李相博)]

하지만 서하객의 답사에서

민장강이 창장강의 발원지가 아니라는 것이 발견되었다.

서하객이 답을 찾진 못했지만

그의 답사는

훗날 창장강의 발원지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창장강 싼샤 구간[사진 출처: 신화망/촬영: 왕정쿤(王正坤)]

충칭 자링(嘉陵)강[촬영: 신화망 리상보(李相博)] 

창장강 수원의 비밀은

이렇게 수백 년간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1970년대 말 이르러

연합 탐사팀이

칭짱(靑藏)고원을 탐사한 후

칭하이(靑海)성 탕구라(唐古拉) 산맥의 최고봉

거라단둥(格拉丹東) 설산 아래의 퉈퉈허(沱沱河)강이

창장강의 발원지임을 최종 확인했다.

퉈퉈허(沱沱河)강[사진 출처: 인민망]

이렇게 해서

창장강 발원지에 대한 천년의 수수께끼가

마침내 베일을 벗었다.

 

창장강 발원지의 정립으로

창장강은

아프리카 나일강

남미주 아마존강에 이어

세계 3대 강 등극했다.

창장강이 바다로 흘러 드는 곳의 석양 풍경[촬영: 신화망 우카이(吳愷)]

‘산이 평야에서 점점 끝이 나고, 강물이 광활한 벌판으로 흘러 드누나’

이백(李白)이 묘사한 창장강은

고산과 협곡 사이를 용솟음치며

생기로 넘쳐난다.

안후이(安徽)성 츠저우(池州)시 스타이(石臺)현, 추푸허(秋浦河) 원래 이름은 추푸강으로 창장강의 1급 지류다.[사진 출처: 신화망/촬영: 왕판(王帆)]

 

문명의 뿌리

수백 년 전에

민장강이 창장강의 발원지로 오인된 것처럼

오랫동안

사람들은

황허(黃河)강 유역이 중화문명의 발상지인 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옛 말처럼

역사의 절반은

진흙에서 파낸 것이다.

이야기는 창장강 하류에서

서서히 서막을 연다.

닝보(寧波)시 위야오(餘姚)현 쓰밍(四明)산 북쪽 산기슭

야오장(姚江)강이 흘러가는 곳에

허무(河姆)촌과 두커우(渡口)촌이 강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두 마을을 잇는 나루터는 허무두(河姆渡)다.

허무두(河姆渡) 유적지[사진 출처: 중국신문망]

1970년대

어느 해 장마철에

현지 마을 주민이 강가에 홍수 방지 공사를 하다가

노란 볍씨가 가득 담긴 질그릇 단지를 파냈다.

하지만 볍씨는

마법을 부린 듯 순식간에

전부 회색으로 변했다.

 

이렇게

질그릇 단지에 담긴 볍씨를 시작으로

깊이 매몰된 마을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도 몰랐던 문명이 차츰 분명해지면서

매혹적인 강물이 일사천리로 흐르던 남국이

사람들 눈 앞에 서서히 펼쳐졌다.

싼샤댐에 석양이 지자 어선들이 만선의 기쁨을 노래하며 귀항하고 있다.[촬영: 신화망 리상보(李相博)]

이곳의 물과 땅은

왕안석(王安石)이 쓴

‘천리의 장강이 맑고 푸른 파도를 일으키며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이 마치 흰 비단을 광활한 대지에 펼친 듯 하구나’처럼

푸른 천혜의 땅이었다.

구이저우(貴州)성 우장(烏江)특대교[촬영: 신화망 어우둥취(歐東衢)]

허무두 볍씨의 발견으로

중국이 세계 벼농사 문화의

중심지대란 것이

더욱 확실해졌다.

어떤 학자들은

세계 벼농사 문화는

창장강 유역에서부터 시작되어

환태평양 지역, 나아가

세계 각지로 전파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구이저우 칭전(淸鎮)시 훙펑(紅楓)호는 창장강 2급 지류 마오탸오허(貓跳河)강의 상류이다. [촬영: 신화망 저우위안강(周遠鋼)]

하모두(河姆渡, 허무두) 문화

양저(良渚) 문화, 석가하(石家河) 문화가

모두 황허강 유역의 용산(龍山) 문화와 함께

문명 사회를 향해 나갔다.

후난(湖南)성 웨양(岳陽)시가 짓고 있는 항저우(杭州)~루이리(瑞麗) 고속도로 둥팅후(洞庭湖)대교[촬영: 신화사 리가(李尕) 기자]

창장강의 이야기

‘동으로 흐르는 창장강의 굽이치는 물결이 천고의 영웅호걸들을 모두 쓸어가 버렸네’

대관절 창장강이 소식(蘇軾)을 만들었을까

아니면 소식이 창장강을 노래했을까

어느 것이 맞는지

알 수가 없다.

천년을 전해 내려오는 주옥같은 글귀들은

거세게 흐르는 강물과 함께

시간의 발자취를 목격했다. 

충칭 자링(嘉陵)강 강변[촬영: 신화망 리상보(李相博)]

역사의 변천을 겪으며 문명은

더욱 풍성해지기 시작했다.

후베이(湖北) 우쉐(武穴) 경내 최대 댐 징주(荊竹)댐[촬영: 신화망 어우양샤오제(歐陽小潔)]

서진(西晉) 영가(永嘉) 말년에

유목민족이 중원으로 쳐들어왔다.

원래 풍족하고 평안했던 보금자리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전란과 학살을 피하기 위해

수십 만 명의 북방인들이

식구들을 데리고

낯선 땅에서

새로운 정착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며

고향을 등지고 남쪽으로 피난을 갔다.

역사는 이를 ‘영가남도(永嘉南渡)’로 부른다.

이는 중국 역사에서 최초의

북쪽에서 남쪽으로의 대규모 이민이다.

포양(鄱陽)호와 창장강의 합류점[사진 출처: 신화망]

그 후에도

이관남도(衣冠南渡), 안사(安史)의 난, 송(宋) 왕실의 남쪽으로의 천도 등

몇 번의 대규모 이동이 있었다.

북방이 전란에 휩싸이거나

황허 생태계 악화로 나라가 쇠퇴해지고 백성이 가난해지기도 했지만

도도하면서도 자애로운 창장강은

유목민족의 쇠발굽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안식처를 제공했음을

알 수 있다.

안후이(安徽)성 츠저우(池州)시 스타이(石臺)현, 추푸허강 원래 이름은 추푸강으로 창장강의 1급 지류다.[사진 출처: 신화망/촬영: 왕판(王帆)]

쿤곡(昆曲)의 고상한 운치나

쓰촨(四川)의 비단자수,

윤기가 흐르는 쌀이나

장난(江南, 강남)의 번화에서 보듯

창장강은 자애롭고 넓은 마음으로

각기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과 문명을 받아들였다.

창장강 기슭의 도시는

점차

전국의 중심이 되기 시작했다.

상하이는 창장강 경제벨트 중 창장강 출해구(出海口)에 위치해 있다. [촬영: 신화망 우카이(吳愷)]

창장강 주변의 양저우(揚州) 서우시후(瘦西湖, 수서호) 야경[사진 출처: 신화망]

창장강은

설산에서 발원해

바다로 흘러 들어간다.

장장 6000여km

11개의 성을 지나

유구한 중화문명에 자양분을 제공하면서

대대손손 중국인을 길러내고 있다.

창장강 기슭의 우산(巫山)현 취츠(曲尺)향 간위안(柑園)촌의 과수원 자두나무에 대풍년이 들었다.[촬영: 신화망 리상보(李相博)]

쓰촨(四川), 충칭(重慶)에서 장난(江南) 물의 고장까지

창장강 양안에서

초록빛 들판과 논밭에서 남자는 농사를 짓고 여자는 베를 짜고

어부들은 돛단배에서 뱃노래를 부르며 남북을 왕래했다.

장쑤(江蘇) 중부, 창장강과 징항(京杭)대운하가 합류하는 곳에 위치한 양저우(揚州)는 장쑤 창장강 경제벨트의 중요한 일환이다.[촬영: 신화망 시항페이(席航飛)]

싼샤 프로젝트에서 남수북조까지

염황자손과 창장강의 동고동락은

문명의 전승과 연속이

더욱 깊은 의미를 가지게 했다.

오랫동안

창장강은 판이하게 다른

모습과 표정을 지니고 있다.

석양이 창장강 물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촬영: 신화망 시항페이(唐楊)]

옛날

북방이 전란을 당했을 때

창장강은 가장 든든한 수호자가 되어 주었다.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

중국인의 불굴의 의지는

도도히 마르지 않는 창장강처럼

굳세고 강했다.

평화로운 시절에

해외 교민들에게 있어

창장강은

어머니의 자애로움과

집이 있음을 상징했다.

승진후(升金湖)자연보호구는 안후이(安徽) 남부 츠저우(池州)시 경내에 있다. 창장강에 접해 있어 호수에서 하루에 잡히는 물고기의 가격이 ‘금값으로 치솟는다’는 의미에서 이런 이름이 붙게 되었다.[사진 출처: 신화망/촬영: 왕판(王帆)]

하지만

어느 시기,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창장강은 늘 중국인에게

끊임없이 솟아나는 힘을

주었다.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생명력의 배후에는

오랜 세월을 묵묵히 세차게 흐르는 창장강이 있다

안후이(安徽)성 마안산(馬鞍山) 창장대교[촬영: 신화망 천양(陳陽)/장차오춘(張峭春)]

창장강의

광활한 유역은

지금도 여전히 중국 경제의

중심이자 활력의 원천이다.

창장강에 선박들이 오가고 있고, 부두에 컨테이너들이 질서정연하게 놓여 있다.[촬영: 신화망 시항페이(席航飛)]

 

위대한 민족을 길러냈고

억만년을 이어져 내려왔으면서도

시대의 활력이 넘쳐난다

이것이 창장강이다!

 

번역: 이인숙

원문 출처: 신화망(新華網)/신화사, CCTV 다큐멘터리 <장강(長江)> 등 내용 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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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인민망 한국어판  |  (Web editor: 吴三叶, 王秋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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